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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첸] 배꽃이 필때 3

다시 만난 세계

















백(白)국의 재상이였던 태조 장(張)씨 연례가 창립한 계나라의 아침이 밝았다. 이씽은 익숙하게 용포를 차려 입었다. 황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신하들의 길고 지루한 정치 논쟁을 관전하다가 끝이 나면 수천개의 상소문을 들여다보고 그에 따른 답과 왕의 표식을 남겨 주어야했다. 실질적인 정무는 고작 백 개 남짓이 였으며, 그 외의 것들은 안부인사, 혹은 불충한 신하에 대한 고발, 탐관오리에 대한 신고 글이 대부분 이였다. 그렇게 낮을 보내고 나면 궁을 찾아 밤을 보내는 것이 이씽의 하루 였다.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폐하, 황후께서 찾으십니다. 혹 이 미인의 일이 아닐런지요.”

“아, 그 일이 있었지.”

“예..”

“다들 양심전으로 오라 명하라.”

“예 폐하.”


그래도 이렇게 이따금씩 깜찍한 짓들을 벌이니 이씽은 편히 정무일만 볼 수도 없었다. 자신의 수를 읽고서 이리 담대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이씨, 진씨, 란씨 모두 견제하려는 의도는 맞았으나 절멸하려는 것은 아니 였는데.. 재상이 겁이 많군. 죽기는 싫은가 보지. 이씽이 피식하고 웃었다.


“폐하, 마마님들께서 오셨습니다.”

“모셔라.”


황후, 진귀비, 현덕비, 려숙비, 연소위, 장소용, 이미인이 차례로 들었다. 옥란은 무척 수척해보였다. 연금을 하라 했지, 굶기라고 하진 않았는데. 쯧. 마뜩 찮은지, 이씽이 혀를 한번 찼다.


“황제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일어나라.”

“예, 폐하.”


“다들 앉지.”


궁녀들이 찻잔을 주인 앞에 대령했다. 찻잎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양심전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황제가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알기 때문이였다. 황제의 의중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고 하는지, 아니면 그저 죄를 옥란에게 물어 조용히 덮을 것인지를 알아야했다. 황후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1황자의 생모인 진귀비의 손을 들것인지는 황제만이 아는 것 이였다.


“폐하, 이 일은 제가 내명부를 관리하지 못한 제 불충이옵니다. 제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황후가 무릎을 꿇은 채 황제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황후도 이 일은 옥란을 해하려 일어난 일임을 안다. 하지만 증좌가 없으니 피해를 줄이고자 자신에게 죄를 돌렸다. 죄를 받더라도 황후는, 그럼에도 황후였으니. 이씽은 무릎 꿇은 황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 일이 어찌 황후의 잘못이겠소, 죄를 행한 자는 따로 있는데.”


황후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 말은 옥란에게 죄를 물으시겠다는 뜻이 아닌가. 진귀비가 작게 웃었다.


“황후 마마, 폐하의 말이 맞습니다. 이미인이 란첩여를 해친 것이 어찌 마마의 죄이옵니까.”

“…귀비”

“아, 마마의 죄일까요?”


황후가 귀비의 말에 싸늘하게 진귀비를 쳐다보았다. 이미인이 황후의 사주를 받고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였다. 섭매를 죽이고, 그것으로 엮어 옥란도 보내더니 황후도 끌어내려 하는 군. 재상이 자식 하나는 똑똑히 키웠군. 이씽은 속으로 차갑게 냉소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애초에 섭매를 들인 이유가 무엇이였는데.


“약현.”

“예, 폐하.”

“류어의를 불러와라.”

“폐하!”


귀비가 목성 높여 불렀다. 그 꼴이 이씽은 꽤나 통쾌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평온한 얼굴로 진귀비에게 답했다. 무엇이냐.


“어찌, 류어의를, 부르십니까.”

“짐이, 들은 것이 있어서 그렇다.”

“허면, 약현을 통해 답을 들으시지요.”

“직접 듣고 싶어 그렇다.”


문제라도 있느냐. 황제의 하문에 귀비는 답하지 못했다. 귀비의 몸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양심전의 공기가 순식간에 뒤 바꼈다. 황후는 그것을 느꼈다. 찻잔을 들어 차 한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폐하, 찻잎향이 매우 좋습니다.”


옥란을 살려 두실 모양이구나. 황후가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맡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


누구에게는 이 향이 독극물처럼 맡아질 텐데. 귀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똑똑하고 실행력도 좋은데, 담이 좀 없는 게 흠이 군. 이씽이 마시던 찻잔을 성의 없이 내려놓았다. 류어의가 도착한 연유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라.”

“예, 폐하.”


아버지를 통해 원하는 답을 얻어내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찌 이리 불안한가. 귀비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얼굴을 보고 심문한다는 것은 본인께서 원하는 답이 있다는 것 아닌가. 서면으로 받아도 될 것을, 황상께서는 결국은 진씨 가문의 파멸을 바라시는 가. 귀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류 어의, 짐의 하문에 한치의 오류도 없이 답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그 날, 섭매가 마신 탕약에 무엇이 있더냐.”

“…”


결국, 하문 하시는 군. 황후는 짐짓 엄격한 얼굴을 한 채로 슬그머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숨겼다. 옥란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명부 모두가 알았다. 귀비가 그리 주장하니 다들 저마다의 증거를 숨긴 것뿐 이였다. 하지만 황제가 나섰으니 일은 달라졌다.


“폐하께서 하문 하신다. 어서 답하라.”

“예, 첩여께서 드신 탕약에는..”

“…”

“그저 몸을 보신하려는 탕약 재료들뿐이였사옵니다. 폐하.”


허. 감히 황제를 능멸해. 이씽이 책상을 내려쳤다. 결국 진대감의 꼬드김에 넘어갔군. 탕약 재조를 같이 했으니 저도 벌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한 모양 이였다. 귀비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로 웃었다. 그렇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살길을 찾는 법이였다. 대의나 도의도 목숨 앞에선 한없이 가벼운 것이였으니.


“감히 폐하께 거짓을 고해!”

“어찌 거짓이라 하시옵니까. 소신은 거짓 없이 말하였나이다.”

“…”


참으로 뻔뻔했다. 이씽은 그리 생각했다. 황제의 눈을 속이고 황제의 의도를 반하려 드는게 우스웠다. 종대가 아니였더라도 이씽은 알아냈을 일이였다. 황궁안에서 황제를 속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같잖았다. 속았던 적은 없었다, 속아 준 일이 있었을 지는 몰라도.


“그러냐.”

“예, 폐하.”


이씽은 침착하게 답했다. 저들이 모르는 패가 자신에게 있었으니.


“약현.”

“예 폐하.”

“서관의 김재인을 불러오너라.”


덕분에 짐은 유일한 친우를 잃겠구나. 이씽은 씁쓸하게 웃었다.



배꽃이 필 때




늘 그렇듯 종대의 서관은 고요했다. 내명부의 일에 일체 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종대는 그렇지 못했다. 계속 초초했고 불안했다. 어제 보고 들은 일이 맞다면 옥란은 필시 풀려나야 했다. 하지만 소식은 여태껏 들리지 않았다. 종대는 본인이 직접 증언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 누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까, 고작 승은도 받지 못한 재인 따위가 하는 증언을. 종대가 얕게 한숨을 내 뱉었다. 황자께서는 아니 오시는 가. 혹 폐하를 만나 어제 일을 고하셨나. 옥란은, 괜찮을까. 옥란의 걱정에 서책을 정리하는 손길이 더뎌졌다.


“…마마님, 오늘은 쉬시지요.”

“되었네. 한명이라도 일을 더 보태야지. 내가 무어라고 일을 쉬는가.”

“이 미인 마마의 일에 마음 쓰시고 계시는 거 압니다.”

“…”

“허나, 마마님 건강이 우선입니다. 어서 가보세요.”


이 미인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황궁에서 잔뼈 굵은 견상궁은 쉽게 알았다. 증좌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나, 일년의 흐름을 보아하면 그러했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이 모시는 마마는 관여할 수 없었으며 해서는 안됐다. 황궁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위험했다. 고작 반년 남짓 모셨음에도,  마마님을 견상궁은 이렇게 잃고 싶지 않았다.


“황궁에서 죽고 사는 것은 본인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

“폐하께 달린 일이지요. 그러니, 상심을 멈추시고, 눈이라도 붙이셔요.”


한 사람의 목숨이 오롯한 한 사람의 판단에 달렸다니, 어찌 그럴 수 있어. 어찌… 종대는 아프게 쪼아오는 머리를 감싸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들의 입맛대로 이리 쓰고 저리 쓰더니, 일이 틀어져 잘못이라도 되면 버려버리는구나. 금수보다 못한 취급이였다. 황궁의 사람들은 이렇게 잔혹한가, 아니 황제는 어쩜 이렇게 냉혹한 가


“…내명부의 안정을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들의 대의를 위해, 내명부를 위해 옥란이 희생되어야 하는 지 종대는 알지 못했다. 옥란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지만, 이것은 의롭지 못했다.


“…폐하를 뵈어야겠다..”

“마마…!”

“할 수 있는 내에서 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롭지 못한 것은 의로울 때까지 고해야 하며 악한 일은 몸소 나서서 막아야한다. 아비가 자신에게 가르친 배움이 였다. 종대는 서관을 나서서 무작정 앞길로 나섰다. 양심전은 어디인가, 견상궁은 그런 종대를 쫓아 막아 섰다.


“마마님, 들어가시지요, 가시면 안됩니다 마마님!”

“내 걱정 말고 그대는 들어가보시게.”

“마마님, 이리 하시면 무고한 죽음만 하나 더 늘 뿐입니다.”

“바른 말 하고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이거 놓게.”


견상궁이 종대의 허릿춤을 잡은 채로 저지하는 틈새에 약현이 서관에 도착했다. 약현이 종대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재인 마마께 소인 인사올립니다.”

“…그대는 누군가.”

“소인, 폐하를 모시는 약현이라 하옵니다.”

“…황제의 태감께서 어찌 여기에.”

“황제께서 서관의 재인 마마를 불러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폐하께서 어찌 재인 마마를 아시고, 견상궁이 종대를 잡던 힘을 점차 풀었다. 종대는 황자께서 나와 함께 있다 고하셨군. 그리 추측했다. 같이 가지. 종대는 담담하게 약현의 말을 받았다. 한 걸음 떼려는 순간 견상궁이 종대의 손목을 잡았다.


“마마님, 위험한 말은 삼가십시오.”

“알았네.”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종대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대가 약현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견상궁은 하염없이 종대가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부디, 우리 마마님께 아무일 없기를 바라며.




*



“이리로 오시지요.”


약현의 안내를 따라 종대는 양심전으로 향했다. 황제를, 용안을 뵙는 길 이였다.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제가 만났던 황자님만큼 좋은 분이기를, 종대는 속으로 간청했다. 저를 잊지않고 찾아온 그의 친절함의 반이라도, 닮아 있기를. 그렇지 않으면 본인은 어쩌면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이였다.


‘그래도 황궁안에 나의 이름 하나 기억해 줄 이 하나 있구나.’


그만 하면 되었지. 종대는 그리 생각하며 양심전의 궐문을 넘어섰다. 자신의 발언이 진실로 받아들여질지, 새치 혀를 놀리는 거짓으로 판명날지는, 황궁이 결정할 것 이였다.


“김재인께서 당도하셨사옵니다.”

“…들라하라.”


황제의 황명에 종대는 고개를 숙인 채 문턱을 넘었다. 여인들의 분냄새와 무엇을 숨기려는 듯한 짙은 향이 풍겨왔다. 이게 후궁이구나. 종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한마디에 혀가 썰려나가고 눈이 도려가질 수도 있었다. 종대는 침착하게 황제와 황후에 대한 예를 올렸다.


“폐하와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일어나라.”

“예.”


종대는 몸을 일으키며 황제와 황후의 얼굴을 또렷하게 마주했다.


“아…!”


황자님. 1황자님. 종대가 이씽과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하고 묻기엔 그는 분명히 용상에 앉아있는, 황제였다. 아, 그제서야 종대는 놓쳐버린 혹은 흘려버린 조각들을 떠올렸다. 밤늦게서도 서관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 황궁을 제 집 마냥 꿰고 있는 사람, 면류관에 꽂힌 비녀가 금빛 용으로 조각된 사람. 그 사람은 황제뿐이였다. 이씽은 새파랗게 놀란 종대의 얼굴에 작게 한숨지었다. 이래서, 류어의만 부른 것이였다. 이씽은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종대에게 다정히 눈을 맞추며 하문했다.


“..김재인은 짐의 대답에 답하라.”

“..예…예, 폐하.”

“전일, 정각에 재인은 어디에 있었나.”

“…신첩, 내의관에 있었사옵니다.”

“폐하, 이 자의 답을 어찌 믿으십니까! 고작 서관의 시녀에 불과한 자입니다!”


진귀비가 날카롭게 종대의 답을 끊어냈다. 이씽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김재인의 말을 믿는다.”

“…!”

“짐이, 그 날 김재인과 함께 있었거든.”

“..폐하!”

“짐이! 직접 목격했다! 누군가가 섭매의 것에 홍화를 탄 것을 입막음하려 하더군!”


이씽이 세게 책상을 내려쳤다. 후궁들과 시첩들은 그의 호통에 무릎을 꿇어 화를 풀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이씽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진귀비의 굳어진 얼굴이 볼만해 속이 시원했다. 황후도 차를 마시며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숨겼다.


“종대야.”

“…예”

“너는 전일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

“저는..”


저는 무어라 답해야 합니까. 일성 황자라 답해야합니까, 황제라 답해야 합니까. 종대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내가 전일 만난 건 당신, 당신입니다.


“전일 폐하와 함께 있었습니다.”


말이 입을 통해 뱉어낸 순간에서야 종대는 자신이 이씽에게 한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것은 곧 황족모욕죄가 아닌가. 구족을 멸하는 죄였다. 종대가 떨리 가득한 눈으로 이씽을 마주했다. 이씽은 종대의 두려움을 읽은 것인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래. 내가 재인과 함께 보았다.”

“…”

“그리고 누가 그 짓을 하였는 지도 똑똑히 보았지.”

“…”

“허나, 짐은 그동안의 공을 생각해 자비를 베풀어 이번만은 봐주지, 다음은 없다는 것을, 이 자리의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군.”

“…”

“류어의는 입을 함부로 놀리고, 거짓을 고한 죄로 사약을 내린다.”


진귀비의 이가 빠득, 하고 갈렸다. 그리고 그 분노의 시선의 대상은 단연코 종대였다. 후궁의 경외어린, 호기심 어린 눈빛이 종대에게 닿았다. 의도적이진 않았어도 종대는 결과적으로 기세등등한 진귀비에게 발목을 잡은 사람이 되었으며, 어찌됐던 황제가 밤에 찾은 음인이 되어있었다. 종대는 몰려오는 피곤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고한 이 미인의 연금을 해한다.”

“…”

“공을 세운 김 재인에게는.”


첩여 첩지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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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연재간격^.^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는게 놀랍내요..언제나 하트 눌러주시는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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